가을이 깊어질수록 마음 한켠이 시려옵니다.
낙엽처럼 스러진 사랑, 하얀 면사포처럼 끝내 이루지 못한 약속.
백영규의 노래 한 곡이 그 모든 풍경을 불러오고, 예천이라는 조용한 마을이 그 장면의 배경이 되어줍니다.
오늘은 그 노래에 담긴 이별과 그리움을 따라가 봅니다.
하얀 면사포에 담긴 이별의 풍경 – 백영규와 예천의 이야기
아래 순서로 여행을 떠나봅니다.
1. 가을 이별의 선율, 하얀 면사포
2. 노래 속 풍경 – 낙엽, 눈물, 그리고 혼례
3. 경북 예천, 그 혼례의 마을을 걷다
4. 전통의식과 정서적 단절 – 시대가 만든 슬픔
5. 한 곡의 노래로 남은 그 날의 기억
1. 가을 이별의 선율, 하얀 면사포
어느 늦가을 오후, 낙엽이 조용히 창밖으로 흩날릴 때면 문득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창밖에 낙엽지고 그대 떠나가면…"
백영규가 부른 1979년의 명곡 〈하얀 면사포〉는 그 시절의 애잔함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젊은 세대에겐 생소할지 몰라도, 이 곡은 사랑과 이별, 그리고 억눌린 시대의 정서까지 안고 흐르는 대표적인 한국 서정가요다.
특히 ‘하얀 면사포’라는 상징은 결혼이라는 축복과 이별이라는 비극이 교차하는 지점을 건드린다. 마치 이 노래 한 곡이 혼례와 이별을 동시에 노래하는 장송곡처럼 들리는 이유다.
2. 노래 속 풍경 – 낙엽, 눈물, 그리고 혼례
가사의 첫 줄부터 이미 계절감과 감정이 응축되어 있다.
창밖에 낙엽지고 그대 떠나가면
허전한 내 마음은 달랠 길 없다오
웃으며 떠나야 할 당신이기에
새하얀 면사포에 얼룩이 질 때
남몰래 내 눈에는 눈물 고였다오
이 노래는 ‘떠나는 신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남자의 심정일 수도 있고, ‘운명처럼 이별을 맞이한’ 여인의 독백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건, 이 노래는 결혼이라는 축제조차도 눈물로 마무리되던 시대가 있었다는 사실을 절묘하게 드러낸다는 점이다.
3. 경북 예천, 그 혼례의 마을을 걷다
이 노래가 어울리는 장소를 생각하다 보면 떠오르는 고장이 있다. 바로 경상북도 예천이다.
예천은 예로부터 유교적 가치관이 깊은 곳이며, 조용하고 내면의 정서를 잘 담아내는 마을 풍경이 인상적인 고장이다.
예천에는 전통혼례를 재현하는 마을과 한옥이 보존된 예천읍내가 있어, 하얀 면사포가 바람에 흔들리는 장면이 절묘하게 어울린다.
특히 가을이 깊어지는 시기에 찾는 회룡포의 낙엽길, 용문사 입구의 고요한 마을, 한적한 예천시장 골목은 마치 가사 속 주인공이 실제로 거닐던 길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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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가면 그대를 만날 수 있을까...” 최백호의 노래 속 이 첫 소절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마음속에 오래 자리 잡은 한 감정의 이름처럼 다가옵니다. 이 글은 '부산'이라는 도시가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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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전통의식과 정서적 단절 – 시대가 만든 슬픔
1970년대는 급속한 산업화 속에서 사랑도 삶도 이별도 운명이 아닌 현실에 의해 결정되던 시절이었다.
이혼이라는 말조차 꺼내기 어려웠던 시대, 많은 이들이 정해진 결혼의 길에 스스로를 맞췄고, 서로 사랑했지만 갈 수 없는 길이 많았다.
이 노래의 면사포는 단순한 결혼이 아닌, 끝내 함께하지 못한 사랑을 흰 천으로 감싸 묻는 상징이다.
경북 예천 같은 보수적인 지역에서는 이러한 전통 혼례가 더욱 엄격했고, 부모의 뜻과 시대의 요구가 사랑을 가로막는 일이 허다했다.
결혼식장에서 터지는 웃음 뒤에, 한 켠으로 눈물짓던 누이의 뒷모습은 이 노래의 감정선과 겹쳐진다.
5. 한 곡의 노래로 남은 그 날의 기억
백영규는 〈하얀 면사포〉 외에도 ‘슬픈 약속’, ‘편지’ 등 사랑과 상실을 테마로 한 명곡들을 많이 남겼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이 곡은 단연코 그의 감성적 정수라 할 수 있다.
예천이라는 조용한 마을, 잊혀진 혼례의 풍경 속에서 이 노래를 들으면, 마치 그 시절 어느 날의 하객이 되어 울고 있는 듯한 감정이 차오른다.
하얀 면사포에 덧씌운 이별의 기억, 그것은 단지 한 여인의 사연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슬픈 이야기다.
다음 편 예고
[노래가사에 얽힌 고장 이야기 ⑬]
“마포종점 – 은방울자매와 서울의 이별 기차역”
→ 다음 편에서는 1960년대의 명곡 「마포종점」을 통해, 한 시대의 기차역이자 이별의 상징이었던 마포종점과 서울의 변화를 조명해봅니다. 떠나는 이와 남는 이가 마주하던 플랫폼, 그 곳에 얽힌 서울 사람들의 감정을 따라가 봅니다.
출처
백영규 〈하얀 면사포〉, 1979, TBC 방송 녹음
예천군 공식 문화관광 홈페이지: http://www.ycg.go.kr
예천 회룡포·한천정·예천한옥마을 소개 자료
『한국 가요 100년사』, 국립국악원, 2019
인터뷰: 예천문화원 김용학 팀장
◆ View the English translation. Click below.
When autumn leaves fall outside the window and you leave me behind, the heart is left with a hollow it cannot mend. These opening lyrics from Baek Yeong-gyu’s 1979 ballad "White Bridal Veil" are not merely sentimental—they are a poetic cry from an era where love and loss were inseparable.
The song paints a scene where a wedding, symbolized by the veil, becomes a farewell. The white veil does not bring joy, but instead soaks in the tears of a woman who walks away smiling, her heart perhaps breaking silently.
To feel this song’s mood fully, we travel to Yecheon, a town in Gyeongbuk province. Known for its deeply rooted Confucian traditions, Yecheon is serene and reflective—exactly the setting one imagines for a quiet wedding that ends in tears. In places like Hoeryongpo or the alleyways of the traditional market, one feels the echoes of stories like those sung in the song.
The 1970s in Korea were a time when societal expectations dictated marriage choices. Even those deeply in love could not always be together. Parental approval, financial status, and social standing often stood in the way. The bridal veil here becomes a symbol not of union, but of suppression—covering not just a face, but an entire untold story.
Listening to “White Bridal Veil” while walking the silent paths of Yecheon, you don’t just hear a melody—you feel the heartbeat of a bygone love. The song becomes more than a tune; it becomes a testimony of hearts that had to smile while saying goodbye.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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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제작자의 경험과 참고자료 발췌 편집, 이미지 자체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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